왜 JustForex인가?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6월 23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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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을 다룬 저서 중에 지속적인 논쟁을 불리일으킨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존 롤스의 <정의론>이 한 가지도 아니고 세 가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그 저작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반점 제거 연고 검버섯인가?

손등 얼굴에 반점이 생겼나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피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증가합니다. 피부 노화의 대표적인 질환인 검버섯은 저승꽃이라고도 불리며, 얼굴또는 목, 손등, 팔 부위에 주로 발생합니다. 반점 제거 연고는 검버섯 초기에 사용하기 적합하며 기미, 주근깨, 잡티 등의 색소 침착에도 효과적이라는 후기가 있습니다.
반점을 발견하셨다면 계속해서 생각나게 되는데, 하루빨리 제거하는 것이 피부건강과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레이저 시술의 경우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검버섯 조직의 형태나 색, 크기 등에 따라 시술 방법의 차이가 있고, 병의원 등 피부과에서 사용하는 장비에 따라 치료 과정이나 금액이 달라집니다.

지금부터 반점, 검버섯의 원인, 레이저 시술, 검버섯 제거 연고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반점, 검버섯은 왜 생기나요?
  • 반점인지 검버섯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 치료방법(검버섯 연고/레이저 시술)
  • 검버섯 예방법

반점, 검버섯은 왜 생기나요?

반점 또는 검버섯은 햇빛으로부터 나오는 자외선이 피부 노화를 과도하게 진행시켜 발생합니다. 반점, 잡티, 기미, 주근깨와 함께 자외선에 큰 영향을 받는 피부 질환 중 하나로 저승꽃이라고도 불립니다. 또 노화가 되면서 흔하게 발생하며, 간혹 유전에 의해서도 발생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점인지 검버섯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검버섯은 피지분비가 많은 이마나 눈 주변, 목, 손 등에 주로 발생합니다. 팔, 다리에 생기기도 하며 얼굴과 손등에 흔히 생깁니다. 검버섯의 대표적인 초기증상은 경계가 뚜렷한 모양의 갈색 빛으로 변하는 피부 병변이 생기는 것입니다.

보통 손등이나 얼굴에 있는 반점, 검버섯을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40대, 50대 이후 노화가 진행 될수록 발생하기 쉽고, 햇빛의 노출이 많은 곳에 잘 발생합니다. 의학용어로는 피지선이 다량으로 분포된 곳에 주로 생겨 지루각화증이라고 불리며, 양성 종양으로 취급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검버섯이 약간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반점 제거 연고

반점 제고 연고의 가장 큰 장점은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기미, 주근깨, 잡티 등과 같은 피부질환에도 효과적이란 점입니다. 반점 제거 연고는 히드로퀴논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멜라닌 색소 침착을 막아주는데 도움을 줍니다. 또 별다른 시술 없이 검버섯 증상 초기에 검버섯 제거연고를 바르기만해도 증상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반점 제거 연고 후기

검버섯 제거 레이저 시술

반점이 크게 진행되어 크기나 색깔이 눈에 띄는 정도가 되었을 때는 병의원 피부과를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전용 레이저를 사용하여 피부의 검은 색소만을 제거하는데, 시술 시 마취연고를 바르기 때문에 통증 없이 빠르고 간단하게 반점과 검버섯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레이저 시술을 통해 검버섯을 없앴다면 시술 후 3일 간은 제거 부위에 물이 닿지 않게 하고, 자연스레 딱지가 떨어질 때까지 일부러 떼어내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딱지가 떨어진 뒤에는 외출 할 때는 물론이고 집안에 있을 때에도 자외선 차단제를 꼭 발라주어 자외선을 차단해주어야합니다.

또한 흉터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데, 2개월 정도 꾸준히 색소침착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 좋습니다. 꾸준히 관리해준다면 1회 시술에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반점이나 검버섯이 생긴 부위에 가려움이 느껴질 경우에는 단순한 피부 질환이 아닌 체내 장기에 악성 종양이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가려운 증상이 동반된 경우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반점 예방법

반점을 예방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소중한 피부를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입니다. 자외선 차단을 위한 선크림을 잊지않고 꼭 발라주어야합니다. 피부 타입에 맞지 않는 선크림을 사용한 경험으로 인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번들거림이나 답답함 없이 본인의 피부 타입에 맞는 선크림을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또 시중에 일반 화장품 로션이나 크림처럼 사용하는 유형으로 나온 검버섯, 반점 제거 연고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검버섯 제거 연고에 들어있는 성분은 색소침착 전반에 도움을 주고 피부에 유익하며, 검버섯 예방 뿐만 아니라 피부 건강을 지키는데에 도움이 됩니다.

'왜 도덕인가?'(마이클 샌델)-마지막

정치철학은 종종 세상과 동떨어진 듯 보인다. 원칙과 실제 정치는 완전히 별개이며, 우리의 이상을 '추구하며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도 대개는 그 노력이 허물어지고 만다.

어떤 점에서 정치철학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또 어떤 점에서는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철학이 애당초 이 세상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우리의 관행들과 제도들은 이론의 구현이다. 따라서 정치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왜 JustForex인가? 이론과 연관되는 것이다. 정치철학의 궁극적인 문제들, 즉 정의와 가치, 좋은 삶의 본질과 관련한 문제들에는 불확실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다. 바로 '모종의' 답에 따라 살아간다는 점이다. (175~176쪽)

옳음과 좋음. 샌델은 앞에서도 이 용어를 등장시켰는데 한 사회의 바람직한 구성원리, 즉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선시되어야 할 가치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자유주의와 공리주의가 나뉜다는 것이다. 도식적으로 말해 공리의 최대화를 최선으로 왜 JustForex인가? 보는 공리주의는 좋음을, 칸트와 롤스로 이어지는 자유주의는 옳음에 방점을 찍는다는 것이다. 샌델은 옳음을 우선시하는 자유주의의 기획이 현대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종국적으로는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정한 도덕적·정치적 비전에 대한 고찰에서 출발해 보겠다. 내가 말하는 특정한 비전은 자유주의 비전의 일종으로서, 대부분의 자유주의 비전이 그렇듯 정의와 공정성, 개인의 권리를 가장 중요시한다. 그 핵심 논제는 다음과 같다. 정의로운 사회는 결코 특정한 목적을 강요하지 않으며 시민들이 모두 동등한 자유를 갖고 각자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는 선(옳음)에 대해 특정한 관점을 전제로 삼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전반적인 복지를 극대화하거나 덕성을 장려하거나 선을 증진시킨다는 점이 아니다. 선에 우선하며 선과는 별개의 도덕적 범주인 '옳음'이라는 개념을 따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는, 정의로운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것이 추구하는 '텔로스'telos(목적, 목표, 본질)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갖가지 목표와 목적들 가운데서 미리 정해놓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올바른 법률 체계 안에서 시민들이 모두 동등한 자유를 갖고 자신의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는 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묘사한 이상은 '옳음이 좋음에 우선한다'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두 가지로 정리된다. 옳음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첫째, 개인의 권리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희생될 수 없다는 의미이고(이러한 점에서 공리주의와 대립된다), 둘째, 이러한 권리를 서술하는 정의 원칙들은 결코 좋은 삶에 대한 비전을 전제로 삼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이러한 점에서 목적론적 관점과 대비된다).

이것은 현대 도덕철학 및 정치철학에 상당 부분 녹아 있는 자유주의로서, 롤스에 의해 가장 완벽하게 다듬어졌고 칸트에 의해 철학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내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이 같은 비전이 아니라 그와 관련해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세 가지 사실이다.

첫 번째는 그것이 강력하고 깊은 철학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옳음이 선에 우선한다는 주장은 이러한 철학적인 힘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실패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이 자유주의 비전은 철학적으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실천하는 비전이라는 사실이다. (…) 따라서 우리는 그것이 철학으로서 어떻게 잘못됐는지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정치 상황을 진단할 수 있다. 요컨대 첫 번째는 철학적 힘이고 두 번째는 철학적 실패이며 세 번째는 자유주의의 이상이 오래 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이 세상에 불안정하게 구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77~178쪽)

샌델은 라는 책으로 국내에서 매우 유명해졌지만 원래 정의의 문제는 의 저자 존 롤스가 워낙 학문적으로 지대한 업적을 쌓아놓았다. 에 실린 샌델의 약력을 보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면서 학계에 두각을 나타냈다고 돼 있을 정도다. 그럼 롤스는 무엇을 했는가.

앵글로 아메리칸 전통을 가진 사람들에게 선험적 주체라는 토대는 오히려 익숙한 윤리에 생소한 개념을 갖다 붙이는 셈이 된다. 순수이성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도덕의 우월성을 지지할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어쨌든 그것이 바로 롤스의 프로젝트이다.

롤스는 권리가 최우선이라는 논리를 모호한 선험적 주체의 개념으로부터 구출하고자 한다. 칸트의 관념론적 형이상항은 도덕적·정치적 이점을 갖고 있지만 지나치게 선험적인 것에 치중하며 인간적인 상황을 배제함으로써 정의의 우월성에 도달한다. (…) 따라서 롤스의 프로젝트는 독일적인 모호성을 앵글로아메리칸들의 기질에 맞는 원리로 바꿈으로써 칸트의 도덕적, 정치적 가르침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초적 입장의 역할이다. (182쪽)

롤스가 주장하는 정의의 원칙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모두에게 동등한 기본적 자유를 허용할 것, 둘째는 가장 불리한 사회구성원들에게 혜택을 주는 사회·경제적 불평등만을 허용할 것이다.

롤스는 이 두가지 원칙을 주장하면서 두 가지 익숙한 대안, 즉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를 반박한다. 공리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개인 간의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점 때문이다. 공리주의는 무엇보다도 전반적인 복지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사회를 그 자체로 하나의 인간처럼 취급한다. 공리주의는 갖가지 다양한 욕구들을 하나의 욕구로 융합하며, 개개인에게 만족을 분배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 공리주의자들이 개인 간의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유지상주의자들은 행운의 임의성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옳지 못하다. 그들은 왜 JustForex인가? 효율적인 시장경제에 기인하는 분배는 무조건 정당한 것으로 규정하고 사람들은 무엇을 가졌든 그것이 사기나 절도 또는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이유로 모든 재분배를 반대한다. 롤스는 재능과 자산의 분배, 심지어는 누군가에게는 더 많은 것을 안겨주고 또 누군가에게는 더 적은 것을 안겨준 분배조차도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면 행운의 문제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186~187쪽)

앞서도 말했듯 샌델은 에서는 에 비해 자신의 사상을 좀 더 적극적이고 자세하게 펼친다. 아래는 롤스에 대한 매킨타이어의 비판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정의라는 것이 특정 공동체의 역사적, 문화적 유산과 결부될 수 밖에 없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도덕과 확신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우리 자신을 특정한 인간으로, 즉 가족과 공동체와 민족의 구성원이자 그 역사를 떠안은 사람으로, 공화국의 시민으로 간주하는 것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도덕과 확신의 힘은 어느 정도는 이러한 사실에 기인한다. 적어도 이 두 가지를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우리 자신을 완전히 독립적인 자아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도덕은 그저 내가 보유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가치들과는 다르다. 자발적인 책임이나 모든 인간에게 따르는 '자연적 의무' 이상의 그 무엇이다. 그러한 도덕과 확신은 내가 사회적 합의 때문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나의 정체성을 정의해주는 애착과 책임감 때문에 빚을 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190쪽)

샌델은 책의 상당부분을 흔히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존 듀이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립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양자 사이의 긴장을 해소시켜주고 미국적 전통이 가능하게 한 것이 듀이라는 설명이다.

듀이의 철학은 20세기 초 미국인들이 당면한 엄격한 양자택일의 문제(과학과 종교, 개인주의와 공동체, 민주주의와 전문가정치 사이의 융통성 없는 양자택일의 문제)를 완화시켜주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러한 구별을 흐릿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는, 과학은 우리가 경험해나가면서 세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일 뿐 꼭 신앙과 대립각을 세우는 게 아니라고 썼다.

개인주의는 마구잡이로 사리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가진 특유의 역량을, 그것을 끌어내는 '공동생활' 속에서 펼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합리와 불합리를 불문한 채 다수결을 따르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들이 '지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전문가답게 판단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했다. (203쪽)

전통적 자유주의자들이나 동시대의 많은 자유주의 이론가들과 달리 듀이는 정치이론의 기반을 근본적인 권리나 사회적 계약에 두지 않았다. 그는 시민적 자유를 선호했지만 다수결의 원칙을 제한하는 데 우선적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한 사회의 기본적 구조를 지배하는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거나 정부의 침해로부터 자유로운 사생활 영역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듀이의 자유주의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자유란 왜 JustForex인가? 개인들 저마다의 역량을 깨닫게 하는 공동생활에 참여하는 사상"이라는 점이다. 자유의 문제는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요구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찾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내적 삶은 물론 외적 삶까지 길들이고 지도하는 전체적인 사회질서를 어떻게 확립하는가의 문제"이다 . (207쪽)

다시 이어지는 롤스와 정의론에 대한 기나긴 설명. 롤스의 을 언젠가는 읽어보아야 할 터인데. 지금은 마치 내가 에서 발원한 물줄기를 찾아가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정치철학을 다룬 저서 중에 지속적인 논쟁을 불리일으킨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존 롤스의 <정의론>이 한 가지도 아니고 세 가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그 저작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출발점이 되는 첫 번째 논쟁은 공리주의자들과 권리지향적인 자유주의자들 간의 논쟁이다. (…) 롤스의 저서가 불을 지핀 두 번째 논쟁은 권리지향적인 자유즈의 내에서 발생한 논쟁이다. 만약 개인의 특정한 권리가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공동선을 고려하더라도 그러한 권리를 무시할 수 없다면 그 권리는 어떤 권리인지 묻는 일이 남는다. (…) 1970년대 학계를 달군 자유지상주의자(로버트 노직, 프리드리히 하이예크)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롤스) 간의 논쟁은 미국 정치학계에서 뉴딜정책 이래로 친숙해진 시장경제 옹호자들과 복지국가 지지자들 간의 논쟁과 일치한다.

롤스의 저서가 유발한 세 번째 논쟁은 자유지상주의자들과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들 모두 가졌던 가정을 중심으로 한다. 이 가정은 좋은 삶에 대한 여러 개념들 사이에서 정부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권리지향적 자유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설명을 제시하면서도, 인간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정의가 정당성을 갖추려면 좋은 삶에 대한 특정한 개념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칸트, 롤스 그리고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의 이론에서 중심이 되는 이러한 생각은 옳음(권리)이 좋음(선)에 우선한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218~219쪽)

칸트의 경우처럼, 롤스의 경우에도 옳음은 두 가지 의미에서 좋음에 우선하며, 그 두 가지를 구분하는 일은 중요하다. 첫째, 개인의 특정한 권리가 공공선보다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옳음이 좋음에 우선한다. 둘째, 인간의 권리를 명시하는 정의 원칙들은 좋은 삶에 대한 특정한 개념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옳음은 좋음에 우선한다. 롤스의 자유주의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킨 것은 바로 두 번째 주장이다. 이 논쟁은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 논쟁'이라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이름으로 지난 10년 동안 가열되어왔다. (219쪽)

옳음이 우선한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정의가 선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선과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철학적 시각에서 접근해보면, 정의는 좋은 삶과 인간의 가장 고귀한 목적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다수의 문화와 전통에서 나타나는 선의 개념과 관련 없이는 정의와 권리에 대해 깊이 논의할 수 없다. (…) 왜 JustForex인가? 롤스는 <정의론>에서 옳음이 우선한다는 생각을 개인에 대한 자원주의 개념(넓게는 개인에 대한 칸트식 관점)과 별부시켰다. 이 개념에 따르면 우리는 공리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자기가 가진 욕구의 총합으로 정의되지 않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처럼 자연이 부여한 특정한 목적이나 목표를 실현할 때 완벽해지는 인간 또한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자유롭고 독립된 자아로서 자신의 목적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도덕적 의무에 구속받지 않는다. 이는 중립적인 체계로서의 국가라는 이상에서 나타나는 개념이다. (220~221쪽)

샌델은 학문적으로 롤스를 비판하는 쪽에 서 있지만 선배 학자이자, 하버드대학교의 선배 교수였던 샌델과의 추억을 소개하며 그를 '신'에 비유하는 경의를 표했다.

롤스는 학생들과 후배 교수들에게 친절했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겸손한 사람이었다. 나는 1975년 옥스퍼드 대학원을 다닐 때 처음으로 <정의론>을 읽었고 그의 책은 나의 논문 주제가 되었다. 이후 나는 자유주의에 관한 그 위대한 저서의 주인을 만나지도 못한 채 하버드대 정치학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그런데 하버드에 도착하자마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선 반대편에서 주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 존 롤스, R-A-W-L-S입니다." 신께서 몸소 전화를 걸어 점심을 함께 먹자고 말하면서 자신이 누군지 모를까봐 자기 이름의 철자를 일일이 말해주는 것에 버금가는 상황이었다 . (267쪽)

아래는 롤스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자 결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주의라는 레테르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개인의 '자유'만 가지고는 사회가 형성, 유지될 수 없다고 본다. 자유주의자들도 이러한 논리적 비판을 일찍부터 의식하고 있었는데 '사회적 계약'이라는 최초의 사회결성 계기를 가정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사회적 계약이라는 것이 현실에선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게 만드는 그것에 천착한다.

공화주의의 핵심 이론은 "시민의 자유는 자치를 공유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러한 사고는 자유주의적 자유와 모순되지 않는다. 정치 참여는 개인이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주의 이론에 따르면 자치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해야 한다. 그것은 시민들에게 공공선에 대해 숙고하게 만들며 정치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짓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선에 대해 숙고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목적을 선택하고 타인에게도 똑같은 권리가 있음을 존중하는 능력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공공에 대한 지식과 전체에 대한 소속감, 책임감, 현재 기로에 놓여있는 공동체와의 도덕적 유대가 필요한 것이다. (271쪽)

샌델은 미국 정치에서 자유주의 진영인 민주당이 보수주의에 밀리고 있는 것은 '도덕'의 문제를 외면했기 때문이라는 책 서두의 주장을 다시 꺼내 공동체와 도덕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자유주의를 요구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 하고 있다.

첫째, 자유주의 진영은 시민자치와 공동체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선거권도 중요하지만 자유주의에는 선거권을 넘어서는 자치의 비전이 필요하다. 나아가 국가와 개인의 사이를 중재하는 풍부한 시민적 자원을 포용할 수 있는 공동체의 비전을 세워야 한다.

둘째,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해하고 거기에 참여할 이유를 발견하지 않는 한 그 어떤 간곡한 권고로도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국) 민주당은 그들만의 연방주의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으며 정치적 책임에 대한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민주당은 연방주의 이론을 마련하기 위해 우선 국민의 기본 권리를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해 지역공동체가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에서 큰 역할을 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종 평등과 모든 시민이 적절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권리와 함께 학교에 대한 지방정부의 통제권을 강화할 방법 등이 있다.

셋째, 정치권은 현대 경제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전례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자본과 대기업의 무소불위, 적대적인 노사관계를 다룰 정책이 필요하다. 자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공공철학은 적자예산과 세율 등의 거시경제가 아니라 경제구조에 관한 질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 그러한 공공철학은 GNP를 최대화하는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자치가 가능한 공동체의 관점에서도 다룰 수 있다. (…)

넷째, 도덕적·종교적 담론을 공공생활과 분리시키려는 충동을 극복해야 한다. 즉 정부가 중립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 도덕적 의미와 공동선이 결여된 공공생활은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오히려 편협한 태도를 불러온다. 여태껏 도덕적 다수파가 보여주었듯이, 도덕적 자원을 적절히 활용하지 않는 (그래서 오히려 그 자원을 감소시키는) 정치는 편협한 도적주의를 강효하려는 이들에게 잠식당할 위험이 크다. (…)

최근 자유주의는 공동선의 비전을 제시하는 과제에 실패해 비틀거렸고, 이는 보수주의자들에게 미국 정치의 가장 잠재성 있는 자원을 양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자치와 공동체의 공공철학은 자유주의자들이 이러한 자원을 다시 되찾을 수 있게 해주며, 도덕적, 정치적 진보를 추구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317~318쪽)

왜 JustForex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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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가즈오 저/김윤경 역 | 다산북스 | 2021년 05월 12일

MD 한마디 『왜 일하는가』를 잇는 금세기 최후의 경영 바이블! 전 세계 500만 직장인의 삶을 바꾼 『왜 일하는가』의 저자이자 살아 있는 왜 JustForex인가?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 이번 책에서 그는 모든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미세한 차이는 바로 리더의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아흔의 문턱에서 인생 최후에 바라본 인간 마음의 저력이란 과연 무엇일까? - 경제경영 MD 강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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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명)

일본 교세라 창립자이자 명예회장.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며 살아 왜 JustForex인가? 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린다. 1932년 일본 가고시마에서 태어나 가고시마대학교 공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직후 간신히 교토의 오래된 제조회사에 취직했다. 제날짜에 월급 받기도 힘겨울 정도로 회사의 재정 상태가 매우 나빴지만 그곳에서 파인세라믹스의 재료 개발에 참여했다. 그 일은 연구 경력이나 실력에 . 일본 교세라 창립자이자 명예회장.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며 살아 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린다.
1932년 일본 가고시마에서 태어나 가고시마대학교 공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직후 간신히 교토의 오래된 제조회사에 취직했다. 제날짜에 월급 받기도 힘겨울 정도로 회사의 재정 상태가 매우 나빴지만 그곳에서 파인세라믹스의 재료 개발에 참여했다. 그 일은 연구 경력이나 실력에 비해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개발에 매달렸고, 결국 성과를 냈다. 스물일곱 살 되던 1959년 자본금 300만 엔으로 교토 세라믹(현 교세라)을 설립하여 연간 1조 5,000억 엔, 6만 9,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84년에는 일본전신전화공사(NTT)의 독점에 대항해 질 좋고 저렴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이니덴덴(현 KDDI)을 설립하여 매출 5조 엔에 육박하는 거대 통신 기업으로 키워냈다. 2010년에는 80세를 눈앞에 두고 파산 직전의 일본항공(JAL)의 재건을 위해 회장으로 취임해 1년 만에 흑자 전환, 2년 8개월 만에 다시 주식을 상장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왜 JustForex인가? 내는 왜 JustForex인가? 항공회사로 만드는 등 극적인 V자 회복을 이뤄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일을 통해 그는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저서로는 《바위를 들어올려라》,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사업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의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 《왜 일하는가》,《불타는 투혼》, 《일심일언》, 《아메바 경영》 등이 있다.

일본어 전문 번역가.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오랜 직장 생활을 거쳐 번역이라는 천직을 찾았다. 다른 왜 JustForex인가? 언어로 표현된 저자의 메시지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의 무게와 희열 속에서 13년째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다. 현재 출판번역에이전시 글로하나를 꾸려 다양한 언어권의 도서 리뷰 및 번역 중계 업무도 함께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일을 잘한다는 것』,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왜 일하는가』, 『. 일본어 전문 번역가.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오랜 직장 생활을 거쳐 번역이라는 천직을 찾았다. 다른 언어로 표현된 저자의 메시지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의 무게와 희열 속에서 13년째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다. 현재 출판번역에이전시 글로하나를 꾸려 다양한 언어권의 도서 리뷰 및 번역 중계 업무도 함께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일을 잘한다는 것』,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왜 일하는가』, 『왜 리더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뉴타입의 시대』, 등 50여 권이 있다.

만든 이 코멘트

책 속으로

출판사 리뷰

★ LS그룹 구자열 회장,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의장이 가장 신뢰하는 경영 바이블 ★

“나는 늘 위태로웠고 불안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뿐이었다.
돈도, 명예도, 인기도 언젠가는 반드시 허물어진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토대에 두고 회사를 이끌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왜 어떤 리더는 기어코 목표를 달성하고,
어떤 리더는 끝내 실패하는가?”
60년간 경영자의 자리에서 바라본 리더의 자격, 리더의 마음

사람들은 흔히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고난과 역경이 닥치면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이라며 단념하고 만다. 심지어 수많은 종업원의 미래를 책임진 리더들조차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나눠놓고 접근한다. 60여 년을 경영 최전선에서 복무하며 수많은 리더를 관찰한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갖은 난관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을 탓하다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는 리더들을 볼 때마다 늘 안타까웠다. ‘왜 어떤 리더는 기어코 목표를 달성하고, 어떤 리더는 끝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가?’ 2011년 국내에 출간되어 30만 부가 팔린 ??왜 일하는가?? 이후 10여 년간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겪은 깨달음을 집대성한 이번 책에서 그는 모든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미세한 차이는 바로 리더의 ‘마음’에 있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친척 집에 머물던 소년 이나모리 가즈오는 폐결핵에 걸린 숙부와 숙모로부터 병이 옮을까봐 와들와들 떨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함께 지내던 아버지와 친형은 감염 따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간병에 나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려움에 휩싸여 방 안에 꽁꽁 숨은 이나모리 가즈오는 결핵의 마수에 걸려 죽음의 공포에 신음했고, 병에 의연했던 다른 가족들은 마치 재앙의 총알을 빗겨난 사람들처럼 멀쩡했다.
“어떤 재난이든 그것을 끌어당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마음이 부르지 않는 일은 그 어떤 일도 왜 JustForex인가? 일어나지 않는다. 현실이 사람의 마음과 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현실을 만들고 움직여나가는 것이다.”
이때 깨달은 한 조각 진실은 그가 훗날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경영자가 되기까지 한시도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한 철학이 된다. 혹시 당신도 실패의 두려움에 압도되어 성공을 의심하고 있진 않은가? 불안과 혼란 속에서 당당했던 초심을 잊진 않았는가? 그런 당신에게 이나모리 가즈오는 분명하게 말한다. “성공을 의심하는 사람에게 성공이 찾아올 리 없다. 오직 성공만 생각하고, 성공할 것처럼 행동하라!”

“리더의 마음은 어떻게 조직에 퍼져
성공의 방아쇠를 당기는가?”
지방 중소기업을 ‘세계 100대 기업’으로 도약시킨 급성장의 토대

60여 년 전 자본금 3000만 원으로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사업을 처음 시작한 그는, 무작정 찾아간 회사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당신네 같은 작은 회사에 부품 의뢰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가 월급을 받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적당히 타협을 하거나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함께 젊음을 바쳐 회사를 일군 동료들이 있었고, 당장 갚아야 할 채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의 모멸을 참아내면 자신의 마음만 다치는 것에서 끝나지만, 이대로 몸을 돌려 물러서면 그를 믿고 기다릴 직원들의 마음까지 무너져 내릴 것이기에 그는 상처 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뎠다.
직원 수십 명에 불과했던 교세라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계기는 글로벌 기업 IBM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컴퓨터 부품 제작을 수주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교세라가 지닌 기술력과 설비로는 그 정도 물량의 부품을 양산하기는커녕 시제품을 개발할 역량조차 갖추지 못했다. 그는 직원들과 피를 토해가며 밤을 새워 제품 개발에 몰두했고, 수차례의 불량 판정에도 불구하고 끝내 IBM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사양을 충족시켜 무려 2000만 개의 부품을 추가 수주하는 데 성공한다. 무엇이 자본금 3000만 원의 지방 중소기업을 이런 엄청난 성공으로 인도한 걸까? 이나모리 가즈오가 고백하는 성공의 비결은 단순하다. “위기를 넘기는 건 인재도, 돈도, 기술도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서릿발 같이 단단한 리더의 마음은 순식간에 주변에 퍼져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회사는 바로 그 힘으로 성장한다.”

“당신은 어떤 리더인가?
당신의 마음은 폭풍 속에서도 고요한가?”
불안한 시대를 건너는 오늘의 리더들이 정면으로 맞서야 할 질문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에릭 슈밋. 위대한 경영자는 많지만, 일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를 변화시킨 경영자는 흔치 않다. 저자의 전작 『왜 일하는가』가 매일 아침 힘겹게 일어나 일터에 나가야 하는 이유를 치열하게 묻고 따진 책이라면, 『왜 리더인가』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를 이끌고 세상에 없던 일을 새롭게 벌이려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마음의 힘을 다루는 책이다. 그가 지난 반세기 넘게 온몸으로 증명해낸 마음의 저력을 우리도 깨달을 수 있다면, 벼랑 끝에 매달린 것 같은 불안과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성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바뀐 것은 마음가짐뿐이었다. 마음의 방향을 바꿨을 뿐인데 그 순간 나를 둘러싼 상황이 거짓말처럼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아흔의 문턱에 쓴 이 책에는, 내일이 두렵고 오늘이 불안한 한국의 무수한 리더들이 경험했을법한 초조함과 성공에 대한 갈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을 떨치고자 그가 어떻게 마음을 단련했는지, 그 결과 일과 인생이 어떻게 거짓말처럼 변화되었는지 적혀 있다. 시작할 당시의 패기와는 달리 여전히 깜깜한 터널 속에 갇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창업가라면, 위로는 상사의 압박과 아래로는 팀원들과의 소통 문제로 자신의 능력이 한없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는 중간관리자라면, 직원들에게 일과 사업의 비전을 제시할 수 없어 고민이 깊은 CEO라면, 마음의 힘만으로 세상에 우뚝 선 저자의 살아 있는 경험이 단단한 위로와 희망이 될 것이다.

“반세기 이상 기업 현장을 진두에서 지휘해온 그가 리더의 자격으로 ‘마음의 정진(精進)’을 꼽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을 통해 그 답과 함께 마음의 힘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을 배워보라.”
- 구자열 (LS그룹 회장)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동양철학적 접근법은 미국 스타트업의 성공 방정식만 찾는 창업가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울림을 준다.”
-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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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쏠트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걸 따라가는 겁니다. 보이는 걸 좇는 것은 확인이라고 하지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를들어 내가 여러분에게 '내 손에 동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물으면 여러분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 손에 동전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내가 다시 "내 손에 동전이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내 말을 믿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때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내 말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동전을 믿는 것도 아니고 내 손을 믿는 것도 아니고 내 말을 믿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 이름을 통해서 그분이 존재한다는 걸 믿는 겁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이름이 없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이 땅의 모든 것들을 지으시고 아담을 불러서 만물의 이름을 짓게 하십니다. 만물을 지으신 건 하나님이지만 그 이름은 우리 인간에게 붙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우리를 초청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특권이지요.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무라고 하면 없다고 생각하고, 공 空이라고 하면 비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무나 공이라고 하는 상태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신이 없다고 말하려면 신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무신론은 신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입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신론자들은 자기 자신을 믿습니다. 자기 자신이 신이 되는 것입니다. 혹은 사상이나 물질을 신으로 삼습니다. 어떤 모양으로든 신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진정한 리더를 만나지 못하면 자꾸 곁길로 빠지고 허황된 것을 좇는다(235)

~당시 랍비들한테는 문하생이 따라다녔는데 가말리엘이나 힐렐과 같은 유명한 랍비들의 문하생이 되는 것은 요즘 아이비리그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열세 살까지 모세오경이라고 부르는 창세기,출애급기,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통째로 외워야 겨우 입학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도 그들 중에서 다시 추려서 문하생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랍비의 문하생이 될 생각도 없었고 또 손톱만큼도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혹시라도 제자 삼아 달라고 찾아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단번에 거절해야 할 사람들을 예수님은 직접 찾아가서 "나를 따르라"하신 것입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숨이 턱 막혔습니다. '신은 인간을 찾아간다.'

인간과 깊은 관계를 맺기 원하는 신이 인간을 먼저 찾아간다는 시실을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가 애써 찾지 않아도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을 찾을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존재는 먼저 우리에게 다가와야 합니다. 그분이 진짜라면 우리를 초청해야 합니다. 불러야 합니다. 신이 유명한 랍비들처럼 많은 문하생 후보 생들 중에서 제일 똑똑한 놈을 골라서 제자 삼는다면 나 같은 사람은 아무리 찾아가도 그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분에 내게 와서 "
나를 따르라"고 해야 나같은 사람도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붓다는 샤카부족의 왕자였습니다. 왕자로 태어나 결혼도 했고, 자녀도 낳았으나 스물아홉에 다 버리고 출가해서 서른다섯에 득도하여 80여년을 돌아다니며 가르쳤습니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이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유하라'가 붓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내려놓으라'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가져 몬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이 이해되고 깨달아지면 예수님이 우리를 향해 부르시는 "나를 따르라"가 귀에 들립니다.

사실 '내가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크리스천이 된 사람은 없습니다.

팔로어는 자기 것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입니다.

트윗)팔로어보다 충성심에서 한 차원 더 높은 사람들을 팬이라고 부릅니다. 팬들은 유명 스타를 기를 쓰고 쫓아다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를 만족시키니까 그렇습니다. 내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내 기호를 만족시키고 내 성향과 부합하니까 열심히 쫓아다닙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충족되지 못할 때 팬은 순식간에 안티 세력으로 돌변합니다. 그 누구보다 심한 돌팔매질을 한느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좇는 팔로어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는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부르시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대개 내가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서 간절히 그분을 찾을 때입니다.병에 걸려서, 부도가 나서, 회사에서 쫓겨나서 살려달라고 예수님을 찾을 때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병에 왜 JustForex인가? 걸린 것이 축복입니다. 부도가 난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고난이 축복입니다.

그런데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따라나섰어도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따르는 그분은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따르면 생명이 있는 길, 진리의 길을 걷게 됩니다.

~내가 따라나선 사람이 생명으로 이끄는지 사망으로 이끄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도둑이 노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왜 JustForex인가?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는 것이라. 요1010 나보다 먼저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요1008

~~~ 사람들은 권력가와 재력가를 좇습니다. 그것도 충성을 다해 좇습니다. 그들을 대신해 감옥에 갈 각오로 좇습니다. 물론 먹고살 일은 보장을 받지요. 그러니까 권력가와 재력가를 목숨을 바쳐 좇는 이유는 돈때문인 것입니다. ~~~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면 먹고살 것을 책임져 주겟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자기를 죽이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세상과 다른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알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교회를 가니까, 교회 가면 밥도 주고 사람들도 사귈 수도 있으니까, 그 교회 다니면 사람들이 우리 가게에 와서 물건을 사줄 것 같으니까 따라가면 곤란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누구라고 가르치는지, 또 예수님을 따라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예수님을 따라나설 것인가 말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따라나서더라도 최대한 짐을 가볍게 해서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따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니까 갑자기 메시지를 바꾸셨습니다. 기적도 끊어 버리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이후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드니까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피하셨습니다. 군중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따라왔습니다. 거기 가면 먹을 것이 생긴다더라, 병을 고쳐 준다더라 해서 쫓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니까 나중에는 이렇게 설교하셨습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요6.53-56"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더러 식인종이 되라는 얘긴가?'하며 마음이 불편해져서 예수님을 떠났습니다.그러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겠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하고 대답합니다. 계속 따르겠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따르는 자에게 물질을 주겠다, 왜 JustForex인가? 명예를 주겠다 약속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를 주겠다, 나를 마시고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살과 피는 생명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겠다고 하신 것은 생명입니다. 그것도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뭘 주겠다고 하셨는지, 그 의도가 뭔지 정확히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은 생명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육신을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육이 죽어야 영이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므로 육은 무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침 저녁으로 깨끗하게 씻고 화장으로 치장하는 이 육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겠다는 영원한 생명 하나 받으러 좇아가면 될 것을 우리는 그것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님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은 것에만 정신 팔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길과 전혀 상관없는 길을 좇고 있는 것입니다. 대단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해서 나는 팔로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는 그냥 팬에 불과한 겁니다. 나를 만족시켜 주는 말씀에는 승복하지만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말씀에는 모른 척하고 심지어 공격까지 한다면 그는 팬입니다. [내 이야기 입니다 **]

리더가 아니라 팔로어가 되라

팔로어는 다른 말로 제자 입니다. 제자는 자기를 기준 삼지 않습니다. 자기가 따르는 그분을 기준 삼습니다. 모델은 자신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기준입니다. 모델은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입기 위해 자기 몸을 만듭니다. 어떤 옷을 걸쳐도 소화할 수 있는 몸매를 만들기 위해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제자는 예수님을 기준 삼습니다. 그래서 제자는 그분의 뜻, 그분의 의도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기준삼아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모두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기준 삼는 제자로서 살자고 결심한 뒤 세상적으로는 더 손해를 보았습니다. 비서도 없어지고 기사도 없어지고 연봉도 턱없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대신에 비교할 수 없이 큰 기쁨과 절대 빼앗길 수 없는 평강과 상상도 못한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두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눈에 보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따르는 일은 믿음으로밖에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안 보이지만 보이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를 코람데오 coram Deo 라고 하지요. 현존하시는 하나님, 지금 내 옆에, 바로 이 자리에 예수님이 계신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옆에 계신 것처럼 예수님과 함께 살았더니 이제는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 순간순간 느껴집니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느껴지니까 매 순간이 즐겁습니다. 외로움 같은 우울한 기분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집니다. 인간은 남편이 있어도 아내가 있어도 외로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그분, 나를 만드시고 나와 함께하시는 그분을 매 순간 느끼면 외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겁습니다. 그분과 단둘이 만나는 시간이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훨씬 즐겁습니다.

이처럼 리더가 되는 일보다 누구의 팔로어가 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인간은 누구도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열심히 따라가면 또 누군가는 그런 나를 모델 삼아 팔로어로 따라올 뿐이지요. 우리는 그런 사람을(200808) 리더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리더십보다 팔로어십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팔로어가 되지 못하면 리더도 될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팔로어가 아니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그동안 수많은 리더들을 만났지만 깨닫게 된 것은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는 사람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나서야 합니다. 아이들도 리더가 아니라 '예수 팔로어'로 키워야 합니다. 제대로 된 사람을 따라가는 것 부터 배우지 않으면 리더십이 바로 설 수 없습니다.

나의 아들들은 과외를 많이 했습니다. 또래 친구들보다 많이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 과외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요? 솔직한 고백은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됐을 뿐입니다. 지금 아이들이 잘됐을까요? 네, 잘 됐습니다. 아이들이 아빠인 나를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옛날처럼 술 마시고 다녔다면 아이들이 나를 존경했을까요? 아닙니다. 아이들은 내가 ㅇㅖ수님의 팔로어로 따라나서는 걸 보고 한 가지를 배웠다고 합니다. 믿는 바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결단과 믿는 바대로 사는 용기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아빠를 존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자녀들이 '예수 팔로어'로 자라는 것이 가장 잘되는 길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자녀들보다 먼저 예수님의 팔로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아들들도 목사인 나를 따라오면 안 됩니다. 사람을 따르면 결과는 배신하든지 배신당하든지 실망하든지 중 하나입니다. 절대로 사람을 따르면 안 됩니다. 자녀들도 부모를 따르게 해선 안 됩니다. 부모가 자녀를 천년만년 돌봐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잘 따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크리스천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순간,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십시오. 사람을 따라가면 어느 날 상처받고 배신당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면 배신당할 일이 없습니다. 실망할 일이 없습니다. 상처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이런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14.2~3

나는 예수님이 마지막에 하신 이 약속을 믿습니다. 또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6

하신 약속도 믿습니다. 이 약속을 믿기에 나는 죽음으로부터 자유해졌고 죽음이 기대됩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갈지 안 갈지는 50대50인데 확률로 따져도 믿는 게 낫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목사인 나의 인격을 믿으니까 내 말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 보겠다고 말합니다. 어떤 동기로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건 믿음 안으로 점점 걸어 들어가면 놀랍고도 경이로운 예수님이 우리를 맞이하십니다. 그리고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인생의 부조리가 이해되고 용납됩니다. 그동안 살면서 배배 꼬였던 인생의 문제들이 가닥가닥 풀리기 싲가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라갈 때 우리가 겪게 되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세상을 따르지도 말고 사람을 따르지도 말고 예수님을 따르십시오. 그분을 따르기로 결단하십시오. 그분이 우리를 진리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평안으로, 기쁨으로 인도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한대의 값어치를 가진 것들을 소유하게 하십니다.

뉴스

윤기가 좔좔 흐르는 바탕에 색선을 죽죽 박은 스트라이프를 세워놓고, 야속한 주름을 만들어냈던 '구겨진 줄무늬'가 업그레이드했다는 얘기다.

초기에 주로 구겼던 사진도, 이후 추상적 도형이나 문자도, 어느 순간 등장한 줄무늬까지, 구김을 좀더 선명하게 보이려는 장치였다니까.

가뜩이나 주름 생길 일 많은 세상에 왜 하필 구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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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웅주 ‘구겨진 걸작’(Crumpled Masterpiece)(사진=슈페리어갤러리)

서웅주 ‘구겨진 걸작’(Crumpled Masterpiece)(사진=슈페리어갤러리)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구겨진’(crumpled)이 진화를 했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바탕에 색선을 죽죽 박은 스트라이프를 세워놓고, 야속한 주름을 만들어냈던 ‘구겨진 줄무늬’가 업그레이드했다는 얘기다. 기어이 마스터피스(masterpiece)에까지 손을 댄 거다. ‘구겨진 걸작’(Crumpled Masterpiece·2022)을 꺼내놨으니 말이다. 게다가 ‘걸작’의 내용물은 또 반전이 아닌가. 패러디 명작쯤을 실감나게 구겨놨을 거란 기대를 무시하고 문패뿐인 명작을 들여놨으니.

구김을 그리는 작가 서웅주(41)의 ‘허상’이 또 빛을 냈다. 작가는 구겨진 종이로 회화적인 환영을 의도한다. 기가 막힌 붓질 덕분에 그저 종잇장처럼 보이는 화면은 사실 나무틀에 고정한 평범한 캔버스였던 거다. 방점은 오로지 잘 구기기 위한 데 찍는다. 초기에 주로 구겼던 사진도, 이후 추상적 도형이나 문자도, 어느 순간 등장한 줄무늬까지, 구김을 좀더 선명하게 보이려는 장치였다니까.

가뜩이나 주름 생길 일 많은 세상에 왜 하필 구김인가. 한마디로 이미지의 속임수에 빠지지 말란 거다. 어차피 눈앞에 보이는 저것은 환영과 실재가 벌인 ‘짜고 치는 고스톱’일 수도 있으니까.

8월 11일까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슈페리어갤러리서 이해민선·정주영과 여는 3인 기획전 ‘마음의 지층’(Layers of Mind)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오일. 62.2×100㎝. 슈페리어갤러리 제공.

서웅주 ‘구겨진 회색 줄무늬’(Crumpled Gray Stripes #2203), 캔버스에 오일, 91×91㎝(사진=슈페리어갤러리)

서웅주 ‘구겨진 회색 줄무늬’(Crumpled Gray Stripes #2203), 캔버스에 오일, 91×91㎝(사진=슈페리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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